외국인 묘지 공원의 유래(고종황제 하사)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에는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몸바쳤거나, 근대화에 이바지하신 분, 그리고 초대 선교사를 포함한 구미 각구의 저명하신 500여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은 광혜원의 양의사 존 헤론 이 사망하여 묘지를 구하지 못하자 고종황제께서 하사하신 장소로 헤론이 최초로 매장된 외국인입니다.


우리최초의 서양병원 광혜원(세브란스) 


광혜원은 1884년            김옥균     사건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민영일이 온몸에 칼을 맞아 사경에 있을 때, 양의사인 알렌의 치료로 민영일이 완치되었으며 고종황제께서는 서양 의술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광혜원을 설립햇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양병원이며, 훗일         으로      하였고,           은 미국 오하이오주 크리브랜드의 실업가 세브란스씨가 희사한 1만 6\5천달러를 서울역 앞에 세브란스 병원이 생겨났습니다.


존 헤론(John Heron)


헤론은  미국의 테네시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존 헤론은 대한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결심을 전해들은 학교에서는 교수로 남아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고, 지도교수의 딸이자 약혼녀도 적극 만류 하였으나 헤론은 이를 뿌리치고, 1년간 일본에서 한국어 공부를 마친 뒤 광혜원에서 5년간 의료봉사를 하던중 이질에 걸려 영면하게 되었습니다.


배설선생이 양화진에 안장된 이유


배설 선생께서 서거하신 후 대한 사람들은 일제관헌의 손으로부터 유해나 마 온전히 보존하기 위하여 이곳 외국인 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당시 교통수단은 육로보다 수로에 주로 의존하였고 덕진, 초지진, 노량진, 양화진은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적이 침범하여도 이곳을 꼭 지나야 했으므로 서부 서울의                      이었습니다.
배설선생은 살아 계실 때 대한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항일언론투쟁에 앞장서서 일제와 맞서 싸웠고, 돌아가신 뒤에도 양화진 방어선 첨단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인과 한국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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